Money Making

돈은 중요하다. 아마도 인류가 발명한 것 가운데 현재 시점에서 가장 가치를 평가받는 물건이 아닐까 싶다. 디지털 세상이 된 지금은 지폐마저 보기 힘들어졌다. 많았던 적이 없어 모르지만 일상에서 돈의 존재는 명확하며 없으면 확실히 궁핍해진다. 때문에 우리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 노동, 즉 일을 통해 이를 획득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힘을 적게 쓰고 많이 벌 기회를 찾는다.

노동의 기본 목적은 생존이지만, 이제 인간적인 삶으로 확장된다. 노동을 통해 얻어진 돈은 생계와 나아가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 먹을걸 직접 키우는 시대는 아니니까. 나의 시간을 투여해 얻은 가치를 다른 사람의 생산한 가치와 교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들이 많거나 높은 가치의 물건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힘을 많이 써야한다, 벌어야 한다.

세대를 지나오면서도 돈의 중요도는 점점 더 올라가고 있다. 삶의 가치가 생존에서 생활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생활이 생존을 압도하는 가치 변화가 확고해졌고, 생활 수준 차이가 계급으로 인식되니 더욱 더 돈이 중요해졌다. 산업의 시대를 넘어 이제 자본의 시대니만큼 중요함을 넘어 전부가 되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싶다. 모순되지만 수단이 목적이 된 셈이다.

직업으로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길을 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내 역량을 발휘해서 제공하고 대가로 보상을 받고 있다. 물론 높은 연봉을 받으면 좋다. 내가 한 일 혹은 하는 일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할 일의 가치를 미리 인정받는다면 좋겠지만 미래의 나를 저당잡히고 싶진 않다. 돈은 수단이고, 길을 열심히 가기 위해 활활 태울 연료일 뿐이다. 수단을 내 삶의 목적으로 삼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직은 반갑지 않은 변곡점이다. 직업으로써 개발자로써 개발 분야에 몸담고 있다는 건 다행이다. 그럼에도 직장이 바뀐다는 건 내 역량을 투사할 대상의 변화(Pivoting)을 의미하고, 과정 전후에 필수적으로 비용도 함께 따라왔다.

첫번째 이직: 작은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일을 왜 이따위로밖에는 못하나?”라는 스스로의 자책에 답하기 위해 아이엔소프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 리더의 패기가 얼마나 일을 망가트리는지를 경험한 직후였다. 제대로 일하고 싶었고,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몇년의 고생끝에 제품을 만들긴 했지만, 잘 조직된 개발팀의 필요를 뼈저리게 느꼈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커진 팀이 있어야 다음 버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사람들을 갈아넣기 싫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돈을 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과의 끝없는 언쟁이 해결될 기미도 없었다. 다 포기하고 조직화된 체계에서 일을 하는 경험을 늦게라도 갖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서른일곱, 늦깍이 자발적 이직을 처음 결정했다.

두번째 이직: 조직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이사라는 직함과 연봉을 포기하고 네이버로 이직했다. 큰 회사로 옮기는 걸 원했던 와이프도 낮아진 연봉에 생활을 걱정했지만, 그나마 편안해진 마음을 위로로 삼았다. 옮기고 큰 조직이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기술을 쓸 수 있는지를 봤다. 제품이 아닌 서비스가 어떤 방식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소위 헌신(Commitment)이 어떻게 동작되는지를 경험했다. 5년이 채 안되는 시간 사이에 사원으로 시작해서 팀장으로, 그리고 대표이사에게 안된다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낮았던 연봉은 회사의 성장과 서비스의 성장 그리고 역할의 책임이 커지면서 금새 이전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올랐다. 그리고 매출이 아닌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 가치에 중심을 둬야한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됐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보상을 중시했다면 생각으로만 담아뒀어야 했다. 하지만 팀장으로써 이걸 실행했고, 대차게 까였다. 조직 리더가 생각하는 방향과 한참 벗어났었다. 돌이켜보면 이상이야 어찌됐든 조직 구성원으로써 하면 안됐다. 할려면 위, 옆, 아래 구성원들과 충분히 합(Alignment)를 맞췄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조직적으로 사용자 중심의 개발을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커진 상태였다.

세번째 이직: 한국에도 제대로 된 개발 조직

먼 퇴근길에 어느새 동반자가 된 소주 한잔을 하면서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류석문 이사님 기사를 봤다. 네이버 처음 시절에 3개월정도 스쳐 지난 과거 경험으로, 이 분이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병을 비워가는 즈음에 메일을 보냈고, 개발자로 지원하시라는 회신을 받았다. 면접이 마무리되는 6개월 지난 즈음 전년도 원천징수 서류를 보냈다. 딱 그 수준으로 처우 제안 메일이 왔다. 다음날 바로 동의한다고 회신했다. 최단기로 처우 협상이 완료된 케이스라고 나중에 들었고, 그렇게 라이엇에 합류했다.

그저 개발만 하고 싶었지만 팔자탓인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계” 회사였고, 글로벌 회사였다. 어버어버하던 시골 촌놈이 질리다못해 익숙해질만큼 영어로 이야기했다. 뻔질나게 미국 다니면서 이코노미 클래스(Economy class) 증후군도 겪었다. 일을 하는데 얼굴보면서 이야기하는게 왜 중요한지 그러면서 알았다. 무엇보다도 개발(Programming)의 종주국인 미국이 한국과 어떻게 다른지도 배웠다. 기술이 아닌 기술 문화와 프로세스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럼에도 한국팀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 힘들다는 한국의 법적 요구 사항을 기술로 해결했고, 고객 지향의 서비스들도 만들어졌다. 이러면서 리그(League of Legends)만 서비스하는 회사가 아닌 멀티 게임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회사의 성장과 맞물려 보상도 커졌다. 한국의 빠름(기술력)과 미국의 기술 문화 조합이 글로벌의 방향을 제때 한국 시장에 실현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경험을 제대로 된 조직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의지와는 달리 로컬 오피스(Local Office)의 한계는 이 확장을 제한했다. 하지만 한국에 제대로 일하는 제대로된 개발 조직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

완성형을 위해 쏘카로 이직했다. 이기적인 선택이다. 당장의 보상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으니.

이직을 결정 할 때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직적인 안정감과 인정 그리고 결론적으로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네이버도, 라이엇도 나쁘지 않은 회사였다. 아니 좋은 회사였다. 하지만 각 시점에 이걸 넘어서는 채우고 싶은게 있었다. 다행히도 이 절박함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왜 이직 할려고 하나?

경력자 인터뷰의 단골 질문이다. 대부분 본인의 성장을 말한다. 좋은 이야기다.  쏘카에서는 역량을 보고, 협업의 가능성을 보고, 성장의 가능성을 본다. 서로의 기대치가 부합되면 이제 “처우”라는 현실을 논의한다. 처우협상은 인터뷰 과정을 통해 확인한 상대의 역량을 돈이라는 현실로 확인한다. 현실에서 서로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는 항상 다르다. 작은 차이라면 협상이 동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지원자의 기대와 회사의 기대는 어마한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최근 이 경향은 더 뚜렷하다.

큰 차이를 직면했을 때 궁금증이 생긴다. 좋은(매우 좋은) 대우를 이미 받고 있는데 왜 이직을 하려는지? 현재 역량 대비 이미 높은 처우를 받고 있음에도, 이직을 원한다는 건 속된말로 돈값을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환경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을 가능성도 약간 있지만, 과연… 1인분에 대한 의구심은 떨칠 수 없다. 특히나 리더급의 역량이 기대하는 분의 평가는 더욱 냉정해야 한다. 당연히 1인분의 역할을 해야할 뿐만 아니라 동료가 1인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직이라는 수단을 연봉 뻥튀기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분들을 요즘 너무 자주 본다. 2년도 안된 잦은 전직 경력으로 높은 처우 인상을 요구하시는 분들이다. 요즘은 이런 경향이 주니어 지원자들에게서도 나와 우려스럽다. 2년 미만 이직 이력이 있고, 경력 대비 높은 연봉을 요구하는 분은 아무리 높은 기술 역량을 갖췄더라도 드랍(Drop)한다. 회사의 미션에 공감하기 보다는 돈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건 1~3년차 신입이 이미 너무 높은 고액 연봉을 받는 경우다. 이런 경우를 연봉의 저주라고 이야기해야할까? 이런 분들을 받아줄 회사는 흔치않다. 그렇다고 본인의 자존심인 연봉을 깎을 수는 없으니 묶이게 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물안에 갇히게 된다. 물론 다양한 경험을 해볼만큼 규모가 큰 회사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정도 크기의 회사라면 고액 연봉을 주진 않는다.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장을 통해 주변에게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되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이직해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지만, 이직한다는 것 자체가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상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리와 같다. 나는 개인이 회사 구성원으로써 기여를 보여주는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금전적 보상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역량의 증명이 우선이다. 보상을 가장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조직원에게는 “돈값”을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