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안전감 – 끼리끼리의 폐해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사람 사는 어디나 필요하고 중요하다. 특히 조직 사회는 목표 달성이나 성과를 내기 위해 사람 혹은 팀들의 협업이 필수다. 좋은 협업이 이뤄져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설령 결과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성장의 마음가짐을 얻어갈 수 있다. 구성원이 심리적인 두려움 없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심리적 안전이 보장될 때,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협업은 물론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의 협업도 원활히 이뤄진다.

조직이라는 틀 안에서 팀 플레이는 친밀감이란 기반이 필요하지만, 리더의 판단과 결정에 친한 사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리더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팀이라는 조직 환경에서 친밀함은 구성원이 심리적 안전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되야 한다. 그러나 친밀함이 선을 넘는 친한 사이가 되고, 리더의 결정이 리더와 친한 사람들의 결정으로 다른 구성원이 인식하면 문제가 된다. 리더가 내리는 의사 결정은 온전한 책임을 위해서라도 리더 본인의 몫이어야 한다. 당연히 올바른 결정을 위해 다른 구성원의 도움을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그렇기에 공적 관계 안에서 공정하게 도움을 받도록 리더가 관리해야 오해를 피할 수 있고, 도움도 편한게 받을 수 있다.

공적 관계는 공개적인 혹은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를 말한다. 투명성이 보장되고, 누구나 의견에 의견을 덧댈 수 있는 자유로운 자리에서 소통이 이루어져야 공적 관계가 효과적으로 동작한다. 회의 형태가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상 옆에서 나누는 대화도 공적 대화의 대표라고 생각한다. 이외에 따로 시간을 잡고 하는 일대일(1 on 1) 대화 역시 대표적인 공적 대화의 한 형태이다. 공개적으로 선언된 일대일 대화를 적극 활용하면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정보 수집의 불투명성을 제거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사적으로 친한 그들만의 모임과 대화를 통해 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는 지양해야 한다. 대표적인 모습이 흡연 장소나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의사 결정이다. 흡연이 문제가 될 수 없지만 흡연하러 가는 사람의 조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저녁 술자리 구성원 역시 비슷하다. 담배 피우는 사람과 술 마시는 사람은 일부분일 수 밖에 없고, 대체로 같은 사람들과 자리를 반복하게 된다. 문제는 이 자리에서 이뤄지는 결정에 비흡연자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의견은 배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원하던 방식으로 결정이 이뤄지면 다른 구성원은 리더가 일부 인원에게 편향되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는다. 이런 의심은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를 떠나 리더를 신뢰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회사 구성원 사이에 형, 동생과 같은 사적 관계의 대표 호칭을 사용하는 것 역시 전체 구성원에 대해 신뢰 관계를 해치는 행동이다. 조직 안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에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사적 호칭에 의해 특정 개인에 우호적인 결정일 수 있다는 일말의 의구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말(言語)은 본인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편향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아니라고 하지만 일상적인 말의 힘으로 자칫 잘못된 의사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형, 동생 사이와 같은 호칭은 성차별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에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여전히 조직 사회는 남성 중심이고, 여성에게 유리 천장은 매우 두껍다. 현실의 벽이 있는 상황에서 남성 구성원 사이에 형, 동생의 호칭을 듣는 여성 직원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차별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비판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벌어진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촉발된 D&I(Diversity and Inclusion) 정책을 펼친 여러 기업에서도 “Hey Bro!” 라는 일상적인 인사말로 남성 직장인 사이에 쓰이던 말 역시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규정하고, “Hi there”과 같은 중립적 언어의 사용을 권고했다. 전직장이었던 라이엇게임즈에서도 게임 업계에 만연한 남성 중심의 언어와 업무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참고)

개인적이지만 구성원과의 퇴직 면담에서 유사한 사례의 피드백이 있었다. 본인이 팀과 조직장과 갈등 사이에 최종적으로 퇴사를 결정했고, 상위 조직장인 나와 면담을 요청해 이야기를 진행했다. 갈등의 순간에 “왜 조직장 혹은 상위 조직장에게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없었는지? 퇴사 결심하기 이전에 먼저 이야기할 용기를 낼 수 없었는지?”를 질문했다. 변명하자면 스스로 열린 소통과 심리적 안전의 중요성을 리더들에게 강조해왔고, 친밀함을 통해 안전 장치가 동작하도록 신경써야 한다고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구성원에게 동작하지 않은 원인을 알고 싶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구성원의 조직장, 상위 조직장, 내가 아침마다 모닝 커피를 함께 마시며 농담하는 사이고, 종종 비공식적인 술자리를 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야기해봐야 의미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에게는 일찍 출근한 동료들과의 짧은 일과 준비 시간이 다른 구성원들의 눈에는 그들끼리의 “한통속”이 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후 팀장 이상 조직장 미팅에서 피드백의 내용과 나 스스로 끼리끼리 문화를 구성원 관점에서 조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앞으로 특별한 업무 내용이 아니면 따로 부르지 않을테니 오해없었으면 한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 팀장들 가운데 “팀장은 맘편한 사람들끼리 담배 한대, 커피 한잔, 소주에 삼겹살도 안되는거냐?”라는 볼맨 소리가 있었지만, 리더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는 해줬던 것 같다. 그 뒤로는 혼자 모닝 커피를 마신다.

리더는 필요하다면 누군가 희생하는 결정을 해야 하고, 그 희생에 대가를 보장하면 안된다. 리더의 판단과 책임은 조직 전체를 대신하는 판단과 책임이다. 조직 전체의 Global Maximum을 위해 구성원 혹은 특정 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하도록 만드는 일이 리더가 갖는 판단의 무게다. 구성원이 Local Maximum을 추구하는게 아닌 Global Maximum에 공감하면 자발적으로 응하겠지만, 아닌 경우라도 리더의 판단과 지시를 따라야 한다. 냉혹한 판단 지점에서 리더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리더는 되도록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피드백은 받아들이지만 리더가 직접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회사라는 조직 체계에서 형, 동생은 없다. 형이나 동생은 사적 관계를 의미하고, 책임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리더 입장에서 결정의 객관화와 합리성을 위해서도 사적 관계를 갖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특히나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게 아니라면 형이 될 수 없고, 동생이 될 수 없다. 괜히 형, 동생하다 좋은 인간 관계만 망가진다. 회사를 떠나더라도 오래 볼 수 있는 사이가 일 하나를 두고 다시 보지 못할 사이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관계는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진심이 통하는 수준으로 나아간다. 형, 동생이 진심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리더십의 안전감 – 안전의 요소: Empathy, Vulnerability, Radical Candor

개인의 성장을 바탕으로 조직이 성장하려면 심리적 안전이 필수다. 프로 팀 구성원의 한 사람이라면 실패라는 부담을 이겨야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원 팀(One Team)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조직 관점에서는 성장하는 조직 단계와 규모를 이룬 조직 모두에서 위임이 필연적으로 동작해야 하고, 위임이 동작하려면 심리적 안전이 필요하다.

프로 팀의 팀 플레이에서 강조되는 것은 많은 대화다. 대화를 통해 각자의 움직임이 팀 플레이에 효과적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위임 과정에서도 구성원과 리더 사이에 적극적인 소통이 있어야 한다. 위임받은 구성원이 소통없이 독단으로 결정한 결과들이 엉뚱하게 나무의 줄기 혹은 뿌리 수준의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조직이 입는 피해도 클 뿐만 아니라 자칫 결정한 구성원 본인과 위임한 리더 역시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특히 심리적 안전 장치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릴 수 있기에 이런 낭패를 피하려면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짧은 대화, 많은 대화를 통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소통과 공감이다. 그러나 소통을 통한 공감에 앞서, 구성원이 리더에게 다가오는 것이 필요하다. 구성원 입장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리더가 찾아오면 무의식적으로 심리적인 가드가 올라온다. 가드가 턱만큼 올라왔다면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질 수 없기에 리더가 본인의 팀과 리딩하는 팀 구성원을 알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관심을 두고 노력해서 아버지가 뭐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리더 스스로 약점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끄는 구성원에게 위임을 요청하는 것이다. 리더가 너무 높은 사람이거나 완벽해버리면 구성원 입장에서는 다가가기 어렵다. 

리더는 구성원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이 도와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구성원 입장에서도 “구멍 많은 리더를 내가 도와야지!”라는 생각이 나올 수 있다면 최선이다. 물론 역할 차이로 누군가는 지시를 하고, 누군가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지시의 의미가 명령이라면 따르는 사람은 지시 받은 만큼의 결과만 추구할 것이다. 지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 실행하기 보다는 지시의 의미와 근원적 문제 해결을 고민할 수 있으려면 구성원이 리더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이 공감할 때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방안과 노력을 보여줄 수 있다.

리더가 구성원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만큼, 구성원 역시 리더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가 공유되고, 리더 역시 이를 바탕으로 구성원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리더의 솔직함을 어느 정도로 구성원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리더의 느낌을 느낌대로 솔직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면, 구성원이 리더의 이야기를 진정성있게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개인적으로 시니어 리더십을 맡은 이후 AMA(Ask Me Anything)을 이어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를 최대한 공유하고, 현안에 대한 구성원의 질문에 사실과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시간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소중하다. 구성원이 가진 생각을 질문을 통해 듣고, 조직의 리더 입장과 더불어 한 사람의 생각으로 답하는 것이 조직 구성원과의 친밀감을 쌓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전 장치를 완성하려면 구성원이 리더를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으로 소통하고, 소통 과정에 솔직함이 있어야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아닌 약점이 있는 개인으로 인식될 수 있다. 소위 작위적인 이야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직과 긴장을 만들어내고, 방어적 태도를 갖게 한다. 그저 한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알고 있는 사실과 본인의 느낌을 정제된 언어로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구성원에게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라는 직책의 무게는 솔직함을 감추고, 냉철하고 준엄한 태도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팀 플레이를 추구한다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친한척 하는 친밀함이 아닌 진정한 친밀함(Radical Candor)이 있을 때, 리더의 심리적 안전 장치가 실질적인 구성원을 위한 안전 장치로 동작된다.

리더십의 안전감 – 위임을 통한 성장

심리적 안전은 Comfort Zone에 머무르고 있는 구성원이 안전 지대를 벗어나 도전하며 성장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인간은 한 개체로 보면 힘이 없는 존재지만, 집단을 이루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과 집단 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의 차이점은 개인간 상호 작용을 통해 집단의 구조를 환경 변화에 맞춰 적응하고, 나아가 환경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에 기인하여 개인의 역할은 사회 구조 안에서의 상호 작용에 따라 변화한다. 사회와 개인의 변화가 기록되었을 때 이를 역사라 부르고, 사회와 개인이 어떤 결정을 내려 다음 단계의 성장과 성취를 이루었는지 알 수 있다. 심리적 안전은 변화의 순간에 결정할 용기를 주고, 결과를 책임지는 자신감을 넘은 자존감을 심어 준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심리적/육체적 안전을 추구한다. 그 중에서 생존과 먹고 사는 문제 같은 물질적인 안전이 최우선이다. 물질적 생존이 보장되면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존중을 원하고, 자신이 하는 일련의 활동이 사회의 인정과 존중을 받는 심리적 안전을 갈망한다. 물질적,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면 구성원은 Comfort Zone 안에 있다고 느낀다.

반면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외부 환경이 계속 변하기에 조직의 변화는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다. 외부 환경의 변화 요인은 기술 발전과 사회 조직 구조의 다변화 등 다양하다. 변화 요인의 다양성과 외부 변화를 개인과 조직이 예측하고 조절 할 수 없다는 것은 태평양 어느 섬나라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개짓이 우리 나라로 다가올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카오스(Chaos) 이론을 통해 증명된다. 변화하는 환경을 제어할 수 없기에,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조직의 유연성과 발전은 구성원이 변화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추구할 때 가능하지만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특성은 사람을 Comfort Zone에 머무르게 만든다. 지금 따듯한 아랫목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데, 굳이 야생의 험지로 자청해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랫목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믿고, 기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를 확신할 때 구성원은 행동한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게 역량 갖춘 구성원을 찾아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는 구성원의 역량과 잠재성을 확인하고, 구성원이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줘야 한다. 역량을 갖추는 것은 구성원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행동할 용기는 리더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구성원이 용기를 내 도전하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그만큼 실패 가능성이 높고, 실패하면 자존감이 낮아질 위험에 처한다. 리더는 구성원에게 도전 과정에서 넘어질 수 있고, 그럼에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정 장치를 제공해야 한다. 구성원이 상황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리더의 경험을 토대로 주의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 가이드를 줘야 한다. 구성원이 내린 판단의 영향이 나뭇잎 수준인지, 가지, 줄기, 뿌리 수준의 영향력을 갖는지 설명하고, 결정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의 결정에 대한 책임은 리더 본인이 질 것이기 때문에 구성원에게 주어진 기회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 갈고닦은 역량을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이 과정을 위임이라고 부른다.

위임이 명확하게 동작하려면 명확한 위임의 선언과 결정 범위를 리더가 규정해야 한다. 구성원에게 특정 업무를 주도할 기회를 위임하는 경우, 리더는 함께 할 다른 구성원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하여 위임받은 구성원을 위한 심리적 안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공식화 과정을 통해 구성원이 판단과 결정을 통해 업무를 리드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고, 다른 구성원도 이를 명백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결정 범위를 지정해주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판단해야 할 상황이 매번 다를 수 있지만, 결정 범위를 큰 범주에서 정리해 주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 가드레일 역할을 한다. 또한 모호한 결정 순간에 구성원과 리더가 함께 판단할 것이라는 선언 역시 위임받는 구성원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위임한 리더와 위임받은 구성원은 많은 대화를 통해 결정의 영향력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리더는 지속적으로 위임의 동작 상황을 관찰하고,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 위임은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방종이나 방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혹 가드레일을 믿고 100km/h 구간에서 200km/h로 달릴려고 하는 구성원도 있다. 심리적 안전 장치는 구성원이 주어진 기회를 통해 성장하기 위한 안전 장치이지만 안전 장치가 모든 걸 안전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특히 가드레일을 뚫고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리면 기회가 오히려 사람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리더가 주의하고 조심할 부분이다.

위임을 통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크게 낮추는 경우라면 구성원이 보이는 자세가 겸손함인지 아니면 위험을 회피할려는 개인 성향인지 확인해야 한다. 조직 관점에서 인정하고 보상한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구성원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량이 올라가는 것에 합당한 가치를 만들어 조직에 기여해야 한다. 겸손함의 표현이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Comfort Zone 밖의 Fear Zone으로 이끌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자각하고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 역시 리더의 몫이기 때문이다. 만약 겸손이 아닌 안정만을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변화하는 환경에 반응해야 하는 조직에 제대로 기여할 수 없다. 구성원이 가진 역량을 조직 관점에서 활용할 수 없다면, 리더는 구성원이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제안하는 것이 구성원 본인과 조직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과거 사례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술 리드(TL: Tech Lead)가 필요했다. 해당 업무 도메인을 담당하는 팀장에게 새로운 프로젝트까지 맡기기엔 팀장이 수행 중인 업무가 너무 많은 상황이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신규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해야 할 고객 가치가 명확했다. 팀원 가운데 프로젝트를 담당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과 프로젝트 팀을 리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구성원이 있지만, 리딩 경험이 전무하기에 고민된다는 이야기를 팀장에게 들었다. 이에 해당 팀원의 역량을 신뢰한다면 그 분이 역량 발휘할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 드렸다. 그리고 그 분이 가진 역량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도 리더가 해야 할 몫이라고 조언했다. 물론 너무 밀어서 낭떨어지로 떨어지면 곤란하니 상황을 주위에서 잘 관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구성원이 업무를 담당하면, 리딩의 가능성은 이미 확인했으니 마이크로 매니징(Micromanaging)보다는 주기적인 피드백만으로도 충분히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혔다. 이후 팀장이 TL 역할의 팀원과 논의하는 보기 좋은 모습을 지나가다 보았고, 실제 데모를 통해 확인한 결과 역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주도해서 도출해냈다. 더불어 구성원은 TL 역할을 하며 본인이 주도해 프로젝트 팀을 운영하고, 팀을 통해 고객 가치는 물론 업무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어, 새로운 리더 탄생을 기대할 수 있었다.

성장은 성장하라고 조언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준비가 필요하고, 본인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제대로 된 발전과 스스로 자부하는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 조직 체계안에서 제대로 된 구성원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 중 하나가 위임이다. 그리고 위임이 성공적으로 동작하려면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심리적 안전 장치가 있어야 한다. 심리적 안전이 자신의 리더와 동료를 통해 보장된다고 스스로 느낄 때, 구성원은 주어진 기회를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뿐 아니라 더 높은 가치를 조직에 돌려줄 수 있다.

리더십의 안전감 – 실패와 책임

리더는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을 추구하고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조직의 목표를 달성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조직이 성장하려면 실패를 피하기 보다 당당히 맞설줄 알아야 한다. 실패는 개인과 조직이 현재를 넘어서기 위한 밑거름이자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도전은 항상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가진다. 도전의 긍정적인 면은 “할 수 있다!” 라는 마음가짐과 더불어 성취라는 심리적, 금전적 보상을 생각할 수 있다. 반면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난 안돼.”와 같이 자존감이 낮아지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도전에 대해 조직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어느 곳에 무게추를 놓는지에 따라 심리적 안전감의 존재 여부와 수준을 알 수 있다. 실패는 언제든 일어나는 일임에도 실패가 두려워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은 안전 장치가 없음을 구성원이 현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더로부터의 심리적 안전

조직이 긍정에 무게추를 놓기 위한 가장 큰 심리적 안전 장치는 리더에 대한 신뢰다. 팀이 일을 맡고, 그리고 일의 한 부분을 구성원 개인이 주도적으로 맡아 실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구성원이 일을 내것처럼 생각하고 주도할 때 개인 역량의 최대치가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실행 과정에서 이전에 해보지 않은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고민과 실행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고민 시간은 최소화 해야 하고, 실행 시작 전 준비 시간도 최소화해야 한다. 구성원이 리더를 신뢰하면 고민과 실행 준비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앞선 글에서 리더는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리더가 책임진다는 선언으로 부족하고, 리더가 책임 진다는 것을 구성원이 신뢰해야 한다. 리더가 구성원을 책임지고, 구성이 주도한 일의 결과도 책임져 준다는 것을 믿을 때, 조직 안에서 신뢰가 동작한다. 신뢰 상황에서 구성원은 리더와 아이디어를 스스럼없이 상의하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주도적 존재로 일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계획하고, 리더와 논의할 수 있다. 리더는 업무를 주도할 주체로써 구성원을 존중한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혹시나 유사한 경험이 있다면 같은 점과 차이점을 나눠 공유해 줘야 한다. 주의할 점은 경험 공유가 “내가 예전에 해봤는데 말이야…”와 같이 유사 결정을 내리는 형태가 되면 안된다.

리더의 책임은 결과에 있다.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리더가 지지만 실제 결과 도출 과정은 일을 진행하는 구성원들이 져야한다는 것을 구분해 알려야 한다. 심리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리더십의 지원은 구성원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일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하고, 결과가 조직 관점에서 성공인지 실패인지 결론내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이 과정에서 내린 선택이 조직의 성과에 미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가 구성원의 다음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는 선택에 대한 책임은 구성원 본인에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이 있다면 이 부분을 본인의 책임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미래의 유사한 상황에서 선택 할 때, 바른 선택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하는지 곱씹어야 한다. 조직 구성원으로의 성장은 경험의 순간에 무엇을 했고 앞으로 닥칠 미래의 시점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때 이뤄진다. 결과의 책임은 리더의 몫이지만, 과정의 책임은 일을 실행하는 개인이 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더는 과정 사이에 이뤄지는 결정의 영향력을 구성원에게 알리고 공유해야 한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많은 결정들이 이뤄지고, 모든 결정은 결정이 미칠 파급력이 있다. 결정이 미칠 영향은 구성원 홀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리더는 파급력의 범위를 산정하고, 리더 본인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라면 상위 리더와 협의하거나 결정을 유보 혹은 다른 방안에 대한 검토를 구성원에게 요청해야 한다.

모든 결정은 조직에 영향을 준다. 조직을 나무라 가정해보자. 나뭇잎 수준이 영향을 받는다면 일반 구성원이 결정해도 된다. 이 정도 수준의 영향은 구성원이 리더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만약 나뭇가지 수준에 영향력을 갖는다면 가지가 부러진다고 하더라도 나무가 죽는 일은 없다. 리더가 구성원과 합의하면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줄기가 영향을 받는다면 자칫 나무 전체의 성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단순히 리더와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상위 리더십 혹은 회사 리더십을 통한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은 구성원 개인이 결정해서는 안된다. 뿌리 수준의 결정은 최상위 리더십을 포함해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심사 숙고를 통해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뿌리가 잘못된 영향을 받으면 십중팔구 나무가 죽기 때문이다. 올바른 위임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영향력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리더는 구성원에게 위임의 범위를 영향력의 관점에서 알려야 잘못된 판단을 막을 수 있다.

실패는 누구에나가 쓰라린 경험이다. 일 자체로 본다면 업무 담당자의 쓰라림이 가장 클 수 있지만 정작 가장 큰 쓰라림은 리더에게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구성원의 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성취를 통해 성장하고, 구성원과 리더 역시 인정받을 수 있으면 최선이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구성원의 실패를 책임지는 역할로 구성원을 위한 심리적 안전 장치가 되어야 한다. 리더가 책임질 때 구성원은 리더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고, 다음 도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다시 한번 손을 들고 앞서 나갈 수 있다. 리더는 결과와 과정에 대한 책임을 분리하고 위임의 수준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과정을 주도하기 위한 위임과 함께 영향력에 따른 결정 범위를 구성원에게 충분하게 소통하는 것 역시 리더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리더십의 안전감 – 가족 같은 팀 vs. 프로 팀

우리는 팀(Team)으로 일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는 한 개체로 뛰어난 것이 아니라 함께 뭉쳤을 때 그 이상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1+1이 2가 아닌 그 이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사람이다. 물론 사람이 집단으로 만물의 영장에 부합하는 모습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여러 집단의 충돌로 1+1이 -1을 만든 사례도 많다.

개인은 분명 물리적인 한계를 갖는 존재다. 두 다리와 두 팔의 물리적 한계가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사고를 담당하는 두뇌의 한계는 범위를 확정할 수 없다. 제갈공명의 동남풍처럼 특정 개인의 높은 사고 능력과 함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추론 능력이 주유와 같이 물리적 한계를 보충해줄 수 있는 집단과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였을 때 적벽대전과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팀이 긍정의 성과를 낼지 부정의 성과를 낼지는 구성원의 역량 뿐만 아니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인은 팀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리더 역시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담당하는 역할이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개인의 역할이 융합해 집단의 결과를 만든다. 융합 방향이 긍정적이면 합 이상의 결과가 만들어지고, 부정적이라면 이하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각자의 역할만으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융합이고, 융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팀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팀원이 “가족 같은 팀”이라 좋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팀장이 팀원을 살뜰하게 챙기고, 외부 요청이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구성원을 대변한다. 그리고 소소한 개인사를 포함해 서로를 챙겨주고, 무리한 이야기를 굳이 요구하지도 않기에 일상 생활이 업무로 인해 침해받지 않는 상태다. 대비되는 다른 유형으로 “프로 팀”이 있다. 손흥민이 뛰고 있는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팀이 대표 사례다. 리더인 감독을 중심으로 팀이 리그 우승을 하기 위해 경기를 펼친다. 팀 성적이 안 좋으면 리그 중이더라도 선수나 감독이라도 경질 혹은 방출된다. 선수 개인은 높은 보상에 보답하기 위해서 혹은 더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 같은 포지션에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비 엔트리에 경쟁자가 있다. 경쟁자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항상 경계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족 같은 팀이 이상적인 팀에 가깝다.

그럼 조직이 미션 달성을 위해 과감하게 도전할 과제가 있을 때 어떤 팀이 맡아야 할까? 당연히 프로 팀이 맡아야 한다. 왜 가족 같은 팀이 아닐까? 가족을 생각해보면 된다. 어느 가장도 가족 구성원을 도전이란 위험한 상황에 두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같은 팀에서는 팀장과 구성원이 만든 울타리를 통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Comfort Zone안에 팀이 머물게 된다. 도전은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미션이라는 가치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전에 기여하려면 누리고 있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과정을 통해 성장이라는 과실을 얻을 수 있지만 기존의 “당연한 것”에서 벗어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안전을 원하는 팀이 위험을 감수하고 다음 단계 도전을 수행해 결과를 만들 수는 있다.

이에 반해 프로 팀은 “팬(Fan)”의 가치를 지향한다. 프로 팀에게 팬은 고객이자 사용자이다. 팬이 원하는 것은 리그 우승이고, 우승을 위해 팀이 도전하길 원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리더인 감독은 새로운 팀 구성 혹은 전술을 구상하고 실행한다. 감독은 부족한 역량을 채우기 위해 높은 몸값의 선수를 영입하기도 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선수를 방출하기도 한다. 선수에게 가혹할 수 있지만,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감독이고, 기대했던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연히 책임을 받아들인다.

구단이 지불하는 선수의 몸값은 이름값이 아니라 역량에 대한 기대치다. 몸값에 비례하는 역량을 팀 플레이를 통해 보여주길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몸값 높은 선수가 골 넣는 것이 아니라, 골을 넣어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 입장에서 손흥민 선수가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것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손흥민 선수가 종종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승점 3점이 팀 입장에서 더 중요하다. 스타 플레이어가 골을 넣어도 경기에서 패배하거나 비겼다면, 팀 플레이를 제대로 이끌어야 할 핵심 플레이어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팀 플레이다. 승점 3점이라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한다. 골 결정력을 높이기 위해 반복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직접 골을 넣으려 욕심을 부리는 것 보다는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해야 한다. 좋은 위치를 알기 위해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고, 정확한 패스로 팀이 골을 넣을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전방 공격수라도 팀이 위기에 몰렸다면 실점을 막기 위해서는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내가 골을 넣었더라도 상대팀이 골을 더 넣으면 팀의 승점 3점은 날라간다. 무엇보다도 팀 플레이가 중요하고 내가 팀 플레이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팀 플레이에서 플레이어는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포지션을 감당할 역량이 없다면 기용될 가능성이 없다. 갖추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어필해야 하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필드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야 한다. 필드 경험이 부족하면 플레이 감각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팀 플레이를 통해 기여할 가능성이 낮을 수 밖에 없다.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고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 기회를 십분 활용하는 플레이어가 본인의 역량을 다음 단계로 올릴 수 있다. 발전해야만 높은 역량에 상응하는 몸값을 요구할 수 있고, 받을 자격을 갖추려면 기회를 통해 먼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일을 하는 분야도 프로 팀이 플레이하는 것과 같다. 모두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가치 실현에 필요한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치 달성을 위해 리더를 포함한 팀 구성원이 승점 3점을 올리기 위한 팀 플레이를 해야 한다. 성공을 통해 팀은 함께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되고, 개인은 자신의 역량이 팀에 보탬이 될 때 역량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이전에 검증하지 못한 역량을 보였을 때 한 단계 발전한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팀이 비슷한 혹은 더 큰 도전을 실행할 때 자신 역시 구성원으로 기여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개인의 성장이 팀의 성장이 되고, 팀의 도전이 개인의 도전이 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물론 모든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듯이 시도한 모든 도전에 성공할 수 없다. 예상보다 더 큰 역량을 필요로 할 수도 있고, 환경이 변화해서 갑자기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 있다. 그럼에도 팀이 Comfort Zone으로 물러서면 안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혹은 과정에서 실수는 무엇인지를 복기하면서 다음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리더는 구성원의 역량을 살피고, 팀 플레이에 더 큰 기여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 역량이 무엇인지 피드백한다. 그리고 효과적인 팀 플레이를 위한 소통과 협업 방식을 고민한다.

리더는 결과를 책임진다. 팀 구성원은 역할을 책임지지만 팀이 시도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리더의 몫이다. 성공 경험을 만들기 위한 팀 플레이를 고민해야 하고, 구성원 가운데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는게 최선인지 리더가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역할이 융화된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역량의 다음 단계를 기대할 수 있는 구성원이 역량을 발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성원을 파악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피드백과 코칭을 통해 응원해야 한다. 만약 리더 본인이 직접 코칭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적절한 시니어를 통해 멘토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연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플레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벤치로 불러들여야 하고, 감정이 아닌 사실 기반의 피드백을 해야 한다. 부족한 역량과 팀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리더가 책임을 지고 회피하지 않는것이 구성원의 가장 큰 심리적 안정 장치여야 한다. 리더의 책임을 바탕으로 구성원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동료가 이를 지지해주는 심리적 환경 역시 중요한 안전 장치다. 심리적 안전이 확보되면 경험을 갖춘 동료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동료와의 경쟁이 아닌 동료의 성공을 돕는 협업 플레이가 이뤄질 수 있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팀이 함께 성공을 만들어 간다는 확신을 리더가 줄 수 있다면 안전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팀 플레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팀이 만들어 가게 된다.

리더십의 안전감 – Comfort Zone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안하고 싶다. 심리적 안전을 원하는 것도 편안함을 기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지 심리학에서 사회내 구성원의 편안함을 나타내는 용어가 Comfort Zone (안락 지대)이다. Comfort Zone에 대한 정의는 “개인이 주변 환경으로 받는 심리적인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담없이 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상태 (a familiar psychological state where people are at ease and (perceive they are) in control of their environment, experiencing low levels of anxiety and stress.)”를 나타낸다.

편안하면 좋다. 아무것도 안해도 되고, 걱정할 게 없으니 말이다. 안해도 안전한 상태니 안해도 된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심리적 안전이 굳이 필요없다. 편안하면 될 것을 왜 심리적 안전이 중요하다고 하는가? 모든 것이 완벽하고 완전한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편안할 수 없다. 선사 시대 이래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한다. 노동의 근간이 육체일 때는 말 그대로 엉덩이를 한 곳에 둘 수 없었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로 넘어오면서 지적 활동과 발현을 통해 끊임없이 뇌를 움직여야 한다.

세상은 변했지만 삶의 연속을 위해서 우리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안락하길 원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반응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변화는 언제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어떤 경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위험의 강도 역시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입을 피해를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에 변화의 물결을 따라 반응할지 현재 위치에서 버틸지 결정하기 어렵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불안하고, 위축되기 마련이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같이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외부로부터 변화를 완전하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가 현재도 있다. 우물안에 아무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물안 개구리다. 자신을 둘러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한 때는 가능해 보일지 몰라도 지속될 수 없다. 대항해 시대 이래로 우리는 연결되었고, 현재의 우리는 카오스(Chaos)적 연결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조직은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조직이 추구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조직의 존재 목적, 즉 미션이다. 조직의 미션 달성을 위해서 처한 환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대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구성원 역시 환경에 대응하는 조직의 움직임에 동참해야 실질적인 변화 대응과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구성원이 머물던 Comfort Zone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개인이 기존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히 새롭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주도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고,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한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쌓았던 성과와 명성이 새로운 도전에 따른 실패로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은 당연하다. 도전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지 혹은 내가 일을 주도하기에 적합한지 물음표를 계속 갖는다면 스트레스가 개인을 지배하게 된다. 불안과 두려움이 개인을 지배하면, 결국 팀에 전염되고 팀 모두가 불안과 두려움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팀과 구성원이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기 전에 심리적 안전을 뒷받침해주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심리적 안전을 구성원이 느낄 수 있는 조직이 새로운 도전에 과감하게 나설 수 있다. 새로움에 대한 불안과 도전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원초적 감정이다. 심리적 안전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도전은 새로움에 대한 새로운 감정, 즉 “흥분”을 발현시킨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은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다음 계획을 준비할 수 있다. 도전을 통해 이룬 성취는 구성원의 성공 경험을 촉진시키고 다음을 위한 도파민 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그리고 개인의 성취가 팀의 성취, 조직의 성취로 집할될 때 개인은 우리가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세로토닌 호르몬을 느끼게 된다. 도전을 통한 성취가 팀과 조직의 역량으로 자리잡으면 새로운 수준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구성원의 성장을 바탕으로 이뤄진 성장이 건강한 조직의 성장이다. 조직의 성장을 책임지는 역할은 리더의 역할이고, 따라서 구성원의 성장을 이끄는 몫 역시 리더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조직의 외적 환경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변화하는 환경과 이에 대응하기 위해 팀이 어떤 대응을 해야하는지 리더가 결정한다. 그리고 이 결정에는 구성원의 도전과 기여는 필수 요소다.

리더십이 뒷받침해야 하는 심리적 안전은 구성원의 성장을 위한 안전망이어야 한다.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생존에 대한 인간의 기본 욕구다. 리더는 구성원이 인간 본연의 안전 욕구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역량의 수준에 따라 다음 역량을 쌓을 수 있는 도전 기회를 제공하고, 도전을 감당하기 위해 구성원이 가진 강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조직의 구성원으로 요구되는 기여를 결과를 통해 완성해 이전보다 발전된 역량을 갖췄음을 증명하고 동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역량은 말이 아니라 결과로 인정되는 것을 구성원이 공감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주도적으로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리더는 구성원의 도전에서 실패가 성장의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를 무조건 감싸주는 것이 아니다.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큰 실패는 용인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을 위한 실패 관리가 필요하다. 리더는 구성원이 실패를 성장의 한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목표 달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간 점검을 위한 마일스톤(Milestones)을 설정해야 한다. 중간 점검을 통해 과정과 계획을 함께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방향 전환을 논의할 수도 있다. 부분 혹은 과정의 실패는 남은 경로를 수정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실패 원인에 대한 분석은 최종 결과 달성을 위한 쓴 약이 된다. 리더가 실패를 대할 때 특히 주의할 점은 개인이 아닌 내용에 집중해야 하고, 내용을 통해 구성원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책임은 궁극적으로 구성원의 역량 판단 혹은 역량 발전을 이루지 못한 리더의 몫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리더는 가드라인(Guardline)을 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준비된 역량이 있는 구성원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뒤에서 밀어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원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너무 낮은 속도로 간다면 밀어 속도를 맞춰야 하지만 관리를 못해 낭떠러지로 향하면 가드라인 밖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드라인 충돌로 생채기를 입을 수 있지만 다시 달릴 수 있다. 어느 지점에서 속도를 잘 못 조절했는지 스스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속도내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리면 다시 달릴 수 없다. 리더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리더는 구성원이 안전한 Comfort Zone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해야 한다. 구성원이 도전을 결심했다면 Fear Zone으로 진입한다. 불안과 두려움이 있겠지만 흥분된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리더가 도와야 한다.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좌절해 Comfort Zone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점진적으로 리더와 합의한 지점들을 통과해 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Learning Zone에 진입했다면 자신감이 내재화된다. 내재화된 자신감은 일상의 도전을 자신의 역량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다음 단계를 위한 자기 자신의 목표를 리더의 도움없이도 수립할 수 있는 Growth Zone의 상태가 된다.

https://positivepsychology.com/comfort-zone/

불안과 두려움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지금까지 살아남게 만든 생존 감정이다. 인간을 단일 개체로 본다면 이 두가지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필수 감정이긴 하지만 조직이라는 사회를 통해 용기와 흥분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용기와 그에 따른 흥분을 촉발하는 조직의 한 축이 리더이고, 리더가 구성원의 중심점으로 개개인이 갖는 불안정 요소를 결집시켜 하나가 아닌 집단의 힘으로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불안과 두려움은 용기로 변화되어 도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흥분된 마음을 구성원이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의 안전감 – 심리적 안정 vs. 안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는 2020년 즈음부터 국내에서도 Psychological Safety라는 용어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됐다. 이전에 영어로 알던 용어였고, 영어 자체로 그냥 사용했었는데, 한국어 번역은 “심리적 안정”이었다. 단어 자체 번역하면 “안전(Safety)”이지만 의역해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썼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안정이 아닌 안전으로 번역하는 것이 추세다. “Psychological Safety 한글 번역”을 검색어로 구글링해보면 검색 결과 대부분에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심리적인 안정과 안전의 차이는 뭐길래 처음 안정이 안전으로 변화했을까?

국내에서 심리적인 안정이라는 용어(혹은 개념)는 번아웃(Burnout 혹은 Burnout Syndrom)가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던 2010년부터 MZ 세대라는 용어와 함께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출현했다. 사실 번아웃은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나타난 사회 현상이자 병리 현상이다. 1974년 심리학자 허버트 프루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번아웃(Burnout)”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을 돕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심한 스트레스와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의 부정적인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번아웃을 사용했고, 현대에 일반화되어 직업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소진 상태에 이르는 현상을 이르게 되었다.

번아웃은 새로운 생각과 사상을 가진 세대가 기성 세대의 사상과 충돌하며 드러난 단편이다. 기존 세대가 일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사고와 접근 방법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함께 있을 때 충돌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히피 문화가 그랬고, 한국은 80년대 민주화 이후 태어난 소위 MZ 세대가 그렇다. 성장기 육체 노동의 해방과 고등 교육은 더 높은 이상을 새로운 세대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시점에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대적인 준비가 되질 않았다. 70년대 미국만 보더라도 냉전의 전성기이면서 베트남 전쟁시기였고, 2010년대 한국은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실리콘밸리 처럼” 라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지배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업계의 현재 상황을 보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의 이상은 다른 차원에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치, 비전, 미션”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한 달 186만원(2024년 최저임금 합의안 기준 월 총 세후 금액)을 받기 위해서는 불합리성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합리성을 최근 MZ 세대는 공정(Justice)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번아웃은 일에 대해 개인이 갖는 관점과 조직(혹은 사회)이 개인에게 일을 통해 요구하는 관점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Psychological Safety를 “심리적 안정”으로 번역한 것은 일을 대하는 개인 관점을 우선에 뒀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배운 “일”이 실제 현장에서 충돌할 때, 개인은 조직과 사회를 통해 “내가 감당할 일”을 이야기한다. 일을 하는 주체가 감당할 수 있는 체계를 조직과 사회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안정”을 통해 표현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 양적으로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에 주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측면에서 일은 생계 혹은 생활을 위한 일(Job)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반해 “심리적 안전”으로 번역은 본인이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 안전함을 의미한다. 조직 안에서 내가 자유로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느낄 때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리적 안전은 개인이 일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일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 즉 결과에 대한 안전망을 의미한다. 안전망이 동작한다고 느낄 때, 개인은 조직이 요구한 일을 곧이 곧대로 보는 것이 아닌 일을 통해 달성할 가치를 수행 주체 관점에서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나 보다는 내일 혹은 미래의 내가 일이라는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원한다. 일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고, 개인은 일을 직업(Career) 측면에서 살펴본다.

심리적 안전은 조직 관점에서는 가치 중심으로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정보화 및 지식 산업 시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어제 성공했던 방식이 내일도 동작하리라 확신할 수 없다. 변화의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필요하다. 당연히 적절한 방안을 채택하고 실행해야 한다. 심리적인 안전망은 비난받지 않고, 참여를 보장하고, 실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전제 되어야 한다. 구성원이 조직(조직의 리더)를 신뢰하면, 가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수 있고, 조직은 더 빠른 혹은 큰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심리적 안전은 조직과 구성원이 성장이라는 피드백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구성원은 조직이라는 환경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발현하여 성장할 수 있고, 조직은 비전과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구성원의 참여와 기여를 담보할 수 있다. 조직과 구성원이 이와 같은 선순환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조직과 리더가 책임질 몫이다.

번아웃이 왔다고 느낄 때 가장 흔하게 하는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지?” 와 같은 질문이다. 구성원이 갖는 질문에 리더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구성원의 참여와 기여가 조직에 미칠 영향과 더불어 개인의 발전과 성장 관점에서 어떤 부분을 가져갈 수 있는지 답해야 한다. 단순히 조직의 현재를 위해 일하는 부속이 아닌 독립적 개체인 구성원의 내일 모습을 같이 나누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직장인 개인 뿐만 아니라 직업인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심리적인 안정이 아닌 안전은 단순히 일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과정을 통해 발전하길 원한다면 무엇을 배우고 보여줘야 하는지 피드백하고, 본인이 성취할 수 있는 과정을 제시해야 한다.

리더가 제시할 심리적인 안전은 구성원의 커리어에 바탕을 둬야 한다. 물론 구성원이 조직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성장 곡선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나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점수에 맞춰 개인의 미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원하는 그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게 현실이다. 조직원이 번아웃에 빠지지 않고 지속 성장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피드백이 필요하고, 이런 피드백은 개인 성장에 더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다. 조직과 함께 개인의 성장도 책임져야 하기에 리더의 역할은 어렵고 힘이든다.

리더십의 리더 – 성장을 위한 실패 관리

개인의 성장은 매우 중요하다. 지식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매일의 변화에 맞서기 위한 스스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이를 성장이라고 부른다.

개인이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조직도 마찬가지다. 기업 관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만들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므로 치열하게 성장을 고민하고 달성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조직의 목표 설정과 결과는 중요하고, 구성원 모두가 과정에 최선을 다해 참여해야 한다.

리더는 조직의 성장을 책임진다. 조직의 성장과 성장에 대한 기여는 보상과 연결된다. 큰 보상을 원한다면 조직의 큰 성장을 만들거나, 만드는데 기여하면 된다. 소위 중추적인 기여를 한다면 커진 파이에서 더 큰 몫을 가져간다. 성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성장 이야기가 아닌 보상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리더는 조직 성장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닌 보상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리더가 책임진다는 조직의 성장이란 뭘까?

어느 조직이든 사회라는 조직 시스템 내부에 자신의 원하는 혹은 바라는 역할이 있다. 우리의 미션(Mission) 혹은 비전(Vision)은 조직이 갖는 사회의 역할을 정의하고, 조직의 역량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다. 조직의 성장은 궁극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것이고, 부합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역량은 조직을 움직이는 뼈와 근육이다. 리더는 세포인 구성원을 조합하여 혹은 스스로 조합되어 실질적인 근육이 되고, 뼈가 되게 한다. 뼈와 근육을 통해 우리는 역량을 확보하고, 리더의 조율에 의해 움직임이 결정된다. 리더가 만든 뼈와 근육의 조합과 조율이 미션/비전이 도달 가능할지, 어느 만큼이면 가능할지를 결정한다.

리더가 책임지는 조직의 성장은 전체 조직의 목표와 조율(Align)된 담당 조직의 목표 달성이고,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직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조직 역량은 결국 구성원이 보여줄 개인 역량의 합이다. 구성원이 조직안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동료와 최대 효과를 만들 수 있도록 리더가 조율한다. 리더의 책임하에 이뤄진 협동 작업이 실제 이뤄지고 결과로 평가받는다.

뛰어난 결과를 만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여기서 결과 후 보상이 아닌 보상을 먼저 생각하면 뛰어난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뛰어난 결과는 대부분 많은 투자를 요구한다. 여기에 집착이 더해지면 소위 “몰빵”이라는 것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개인 시간 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걸게 되고 결국 포기할 수 없는 대상과 작업이 된다. 몰빵된 작업 결과는 성공이든 실패든 좋지 않다. 특히 실패라고 판정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큰 작업 결과에 대한 실패는 참여한 구성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가장 먼저 판정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고객에 의해 혹은 내부 경영진에 의해 이뤄진 평가와 판정에 동의하지 못하면 조직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이런 불신이 겹겹이 쌓이면 다음 작업에서도 불신의 시선으로 조직의 판단과 결정을 바라보게 된다. 개인에게 기대하는 최선의 역량 발휘 뿐만 아니라 리더의 조율을 온전히 따르리라 확신할 수 없다. 두번째 영향은 개인 스스로에 대한 평가다. 본인이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스스로를 저평가하면서 무능력을 탓하는 경우다. 쉽게 번아웃(Burnout)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개인의 다음 성장을 위한 도전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스스로 포기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 발전에 정체되고 구성원으로 기여할 수 없게 된다.

조직의 성장을 책임지는 리더는 조직과 구성원에게 가해지는 실패의 영향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는 가장 큰 배움의 기회지만, 배울 수 있는 환경이어야 배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안전하게 빠르게 배울 수 있다. 물론 넘어진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자전거 타기가 그만큼 재미있고, 이렇게 하면 넘어진다는 걸 알았다는 배움이 있기 때문이며, 당연히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넘어져도 잡아줄 거라는 믿음이라는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은 넘어져 무릎이 까질 수 있을 정도는 감안하고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벌어져 울먹이더라도 한번 더 타보자고 이야기해볼 수 있다. 자전거 타는 재미는 실패(무릎 까진 아픔)를 배움으로 삼고 도전해볼 가치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뼈 부러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타는 사람은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다시는 자전거 핸들을 잡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 즉 실패를 관리하지 못한 리더의 잘못이다.

결과가 성공일지 실패일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면 실패할 일은 애시당초 하지 않았을테니. 알 수 없기에 성공/실패를 가늠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가능한 빠른 시점에 실패(Fast Fail)를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 시점에 찾아낸 실패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당연히 실패 규모 역시 감내할 수 있는 소규모(Small Fail)이다. 실패라고 하더라도 조직 목표를 위해 실행한 것이기에, 목표 달성을 위해 시도한 결과 평가와 결과에 도달 과정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큰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참여자 관점에서 오늘의 나와 다른 내일의 나를 위한 자양분으로 실패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실행 조직 역시 실패 경험을 통해 조직적인 개선을 도출하고, 조직의 역량을 발전시킨다.

실패가 배움의 기회가 되고, 과정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되면 조직과 개인은 성장한다. 실패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의 메시지를 받으면 제대로 된 되돌아 보기를 할 수 있다. 사람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고, 잘못된 과정을 인정함으로써 이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포용적 문화라면 실패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과정의 오류를 개인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참고할 수 있다. 전체 조직이 경험을 공유하고, 한 단계 발전할 기틀이 만들어진다.

성공과 실패는 0과 1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흑과 백 사이에 넓은 회색의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처럼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 명확하지 않다. 리더가 스펙트럼 어느 회색 지대에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의 가치, 달성한 결과(혹은 마일스톤), 앞으로 나아갈 경로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 지점에서 리더가 확보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실패가 아니라 경로 수정(혹은 피봇팅 – Pivoting)이다. 실패가 아니더라도 만회 비용은 항상 만만치 않음을 잊으면 안된다.

실패와 피봇팅 모두 리더의 책임이고, 책임이어야 한다. 방향을 바꾼다는 건 리더가 애초에 잘못된 방향을 잡았거나 빠른 실패를 파악하기 위한 일하는 방식을 수립하지 않았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리더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는 무책임한 리더이고, 실패 이후의 재도전 혹은 새로운 도전을 같은 리더와 하고 싶은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책임지는 리더는 실패의 무게를 경감시키고, 영향을 구성원이 아닌 자신에게 돌아오게 한다. 구성원의 현재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Fast Fail, Small Fail은 책임지는 리더가 있을 때 가능하다.

리더십의 리더 – Global Maximum을 위한 리더의 목표와 결과

모두가 한 팀이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도 한 팀이 되라고 일하는 방법의 하나로 원팀을 강조한다. 원팀으로 움직여야 미션과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목표가 될성되어 맺어질 열매는 큰 관점에서 보면 조직과 사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에게 현실적인 보상(인센티브 – Incentive)이기 때문이다.

보상(Incentive)과 원팀

산업 혁명을 태동시킨 바탕에는 봉건 체제에서 귀족(혹은 지주) 독식의 보상 체계가 흑사병(페스트)이라는 전대 미문의 대재앙 앞에 무너지고, 부를 축적할 새로운 기회가 상인을 포함한 귀족 이외(주로 상인) 계급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화시킨 요인으로 보상은 일하는 입장에서 어떤 일을 할지(목표)와 얼마만큼 할지(결과)를 결정한다. 특히나 사람의 공헌과 가치를 인정하는 보상 체계는 자본주의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로 구성된 사회가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회사에서 개인에 대한 보상은 소위 얼마만한 업적을 만들어 기여했는지로 평가받는다. 기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실체화가 되어야 한다. 만들다 말거나 엎어진 경우는 실체화 되지 않았기에 기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주 이야기 되듯 파이의 크기는 정해져있고, 내 몫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한다. 일에서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해야하고,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어쨋든 인정받아야 보상으로 연결되기에 평가자의 인정이라는 것 역시 경쟁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경쟁은 과정 뿐만 아니라 일의 선택 단계부터 시작된다. 큰 보상이 있을 것 같은 일을 해야하고, 일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다만 큰 일은 누구나 언제든 만들 수 없다.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큰 일에 필요한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결국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동료와 경쟁하고, 옆 팀은 우리 팀이 꺽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내가 조직 피라미드에서 승리하고 높은 보상을 가져갈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 글머리에서 이야기한 원팀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회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회사라는 목적 조직의 일원으로 일을 하는 것에 의미를 되짚어 보자. 개인 구성원이  원하는 것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발휘해서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에 기여하고, 상응하는 보상을 기대하고 원한다. 보상이 이뤄지려면 회사가 보상할 수 있는 가치 실현(매출과 수익)을 해야 한다. 조직이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한다면 이에 비례해 구성원에게 돌아갈 보상 여력이 더 커질 것이다. 즉, 파이를 키워야 한다. 

파이를 키운다는 것은 개인 혼자의 노력이 아닌 조직 공동체 모두의 노력이 조화를 이뤄야 실현 가능하다. 접시 크기의 피자와 쟁반 크기의 피자 차이를 생각해보자. 접시 크기 피자는 한 사람이 만들 수 있지만, 모두의 배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차지하기 위한 경쟁(눈치보기)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쟁반 크기 피자는 굳이 눈치보지 않아도 될 만큼 모두를 배부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크기의 피자를 만들려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밀가루를 반죽해서 도우를 만들고, 누군가는 토핑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피자를 구울 화덕도 필요하다. 함께 맛있는 피자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맛있게 즐길 보상을 원한다면 그 만큼의 수고를 보태야 한다. 접시 크기 피자를 만들지 쟁반크기 피자를 만들지를 리더가 결정한다.

리더는 목표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고, 구성원은 목표를 실체화하면서 결과를 만든다. 보상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최대(Maximum)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의 최대치는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에 부합해야 하고, 조직의 총 역량을 바탕에 두고 있어야 한다. 리더는 조직의 총 역량을 바탕으로 이룰 수 있는 최대 목표를 설정하고, 설정된 목표를 달성해서 최대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구성원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환경을 만들 책임이 있다.

리더의 목표

리더가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폭넓은 시야다. 좁은 시야로는 달성해야 할 최대 목표를 볼 수 없다. 때문에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직면한 문제에 매몰되지 않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설악산 입구에서 산을 올라가야 한다고 해보자. “산을 올라갔다.” 라는 경험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둬야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입구에서 바라만 보더라도 설악산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흔들바위까지만 가도 충분하겠지라는 목표를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감을 두고 설악산을 바라보면 “설악산을 올랐다.”라는 가치는 울산바위 정도는 다녀와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는게 필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래 그림의 B처럼 좁은 시야로는 정말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 2를 지향하지 못한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A처럼 직면한 문제를 넓은 시야를 통해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당면한 문제에 대한 목표 1이 아니라 제대로 도전해야 할 목표 2를 조직의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목표 설정에서 넓은 시야를 통해 목표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 최대치 결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각자가 역할을 나눠 실행하지만 종종 우리가 추구할 궁극적인 목표를 잊는다. 잊기 보다는 당장의 결과에 매몰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매몰 작용에는 특히 이걸 달성해야 보상 받는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보다는 개인이 조직내에서 살아남아 승리해야 한다는 자기 보호가 우선되면 정해진 혹은 할당된 목표 달성이 공동 목표에 기여하는 것보다 우선될 수 밖에 없다. 당장 우리 팀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이를 늦추고 다른 팀의 성공을 돕는 것이 회사 관점에서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했을 때 우리 팀의 가치가 온전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리더가 확신할 수 없다면 자기 보호 장치가 작동한다. 다른 팀의 성공보다는 내 팀의 결과가 우선이고, 시점을 놓쳐 다른 팀이 실패하더라도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닌 그들의 잘못이라고 규정짓는다.

리더의 결과 – Global Maximum, not Local Maximum

원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조직의 목표를 팀이 뒷받침 하기 위해서다. 회사 대표가 회사의 목표(Global Maximum)를 정하면 경영진은 한 팀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각자가 맡아 실행하지만, 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변화의 각 시점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범위는 어느 특정 조직의 범주에 머물지 않는다. 신규 서비스 개발 속도를 늦추더라도 기존 서비스의 기능을 강화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면 경영진이 한 팀으로 전체 구성원을 조율해야 한다. 담당 조직에 취지와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Global Maximum을 추구하기 위한 각자의 목표 및 결과를 조정해야 한다. 실행에서 팀웍은 필수고, 이번에 골을 넣을 위치에 있는 개인 / 팀 / 조직이 있다면, 그를 도와 전체 조직이 Global Maximum 달성이라는 승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조직이 높은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Local Maximum)은 있을 수 있다. 골 욕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팀 승리를 위한 확실한 한 골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을 패스할 수 있는 팀 플레이가 필요하다.

원팀을 강조하고 요구하는 이유는 Local Maximum이 아닌 조직 전체의 Global Maximum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산업 혁명을 넘어 지식 산업 시대는 노동력이 아닌 지식의 집약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가치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를 실현시키고 짧은 주기를 통해 발전시키며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지 못한 기업은 지속성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Global Maximum은 조직이 가진 “제한된 자원”이라는 제약 사항을 극복하고, 조직 구성원이 합심해 최대의 가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반해 Local Maximum은 조직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결과에 최대치를 만들고 이에 따른 성과 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결국 Local Maximum은 승자 위주의 경쟁 문화를 만든다. 제한된 자원이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특정 개인의 보상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쓰이고 경쟁에 밀린 조직과 개인은 도태된다. Local Maximum을 달성한 당사자와는 무관하게 조직 전체는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많은 기업이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을 도입해 시도하고 있다. 인텔에서 엔디 그로브에 의해 시작된 OKR은 인텔이 주창한 무어의 법칙을 실현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인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빅테크(Big Tech) 기업으로 성장했다. OKR의 핵심은 상위 목표와 결과를 탑다운(Top Down)으로 하위 조직의 리더가 받아 자신의 OKR을 정의하고 실행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말단의 구성원이 가장 상단의 대표의 목표를 이해하고 기여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수직 정렬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리뷰” 프로세스다.

각자가 OKR을 수립할 때 내가 해석한 상위 리더의 목표와 결과, 그리고 결과를 내 몫의 OKR로 받아들였을 때 합당한지 그리고 다른 팀 동료와 몫 나눔이 합리적인지를 맞춰보는 과정이다. 역할과 책임에 따라 판단된 부분에서 “수직 정렬” 뿐만 아니라 “수평 정렬”을 이룰 기회이고, 상위 리더의 목표를 Global Maximum 관점에서 도달시킬 목표와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제대로 동작되기 위해 원팀이라는 마음 가짐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소위 얼라인먼트(Alignment) 중심의 목표와 결과 도출이 가능하다.

국내 기업에서 OKR을 도입할 때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개념이다. KPI 방식의 조직 목표는 숫자에 도달했는지 못했는지에 따라 성과를 인정받는다. 당연히 조직 전체가 아닌 개인 중심의 성과를 우선할 수 밖에 없고, 보상 역시 숫자를 달성했는지 여부에 달렸다. KPI 방식의 목표 및 결과 평가 방식에서 내 KPI를 달성하려면 “제한된 자원”을 쓸 수 있어야 하기에 경쟁이 발생하고, KPI대 KPI의 경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경쟁은 필수가 된다. 결국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플레이보다는 내가 경기에서 몇 골을 넣는가가 더 중요한 평가 요인이 된다. KPI 달성이 일상화된 문화에서 OKR이 동작되길 원하는 건 아이러니다.

 

목표와 결과는 결국 보상을 좌우한다. 역설적이게도 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작은 파이를 나누기보다는 파이 자체를 크게 키워야 한다. 그리고 큰 파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구의 노력이 아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리더의 목표와 결과는 큰 파이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어떤 지점에 도달해야하는지를 나타낸다. 그 과정에서 최대 결과를 만들 책임 역시 리더와 리더의 팀이 가진다. 최대의 결과는 우리 모두의 Global Maximum이어야 하지 어느 누군가만을 위한 Local Maximum이어서는 안된다. Local이 아닌 Global Maximum을 위해 모두 노력하고,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해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조직의 구성원이기에 원팀 마인드가 필요하다.

참고글

리더십의 리더 – 리더의 팀

공식적인 첫 리더의 경험은 팀장에서 시작한다. 물론 회사의 운영 방식에 따라 직급 체계를 정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한국에서는 팀장이 되면서 첫 리더 생활과 함께 조직에서 본인이 책임질 구성원이 생긴다. 조직에서 사람들을 책임진다는 것은 사뭇 남다르다.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의 가장과는 전혀 다르고, 간혹은 가장의 무게감보다 더 큰 무게감을 느끼기도 한다. 첫 리더 역할에서 팀원과 일하는 경험은 좋던 안좋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이후 리더 역할에 많은 영향을 준다.

소중한 팀을 맡고 있는 리더에게 “당신은 어느 팀 소속인가요?” 라고 질문한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당연히 리더가 담당하는 팀이 리더가 속한 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이렇게 되물어보자. 당신 보스(상위 리더)는 당신 팀의 구성원인가요? 이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의 리더가 나의 팀 구성원이라고?

속한 팀과 이끄는 팀

리더라는 존재는 일반 구성원과 다르다. 팀 관점에서 생각하면 속한 팀과 이끄는 팀의 차이가 있다. 리더와 일반 구성원과의 차이는 이끄는 팀의 존재다. 그리고 일반 구성원과 공통점도 있는데 리더 역시 상위 조직장이 이끄는 팀에 속한다는 것이다. 조직 피라미드를 폭넓게 본다면 조직 리더를 정점으로 피라미드 자체를 팀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좁게 정의하면 직속 구성원이 팀이 된다. 그러므로 상위 리더의 팀원은 직속 팀의 팀장(리더)들이다. 이 관점에서 팀장 본인과 한팀인 구성원은 옆 팀 팀장이다. 

조직이라는 틀을 생각했을 때 납득 할만하다. 하지만 정작 같은 보스를 두고 있는 리더가 한 팀이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조직 목표 실현에 있다. 조직으로 뭉쳐서 일한다는 건 함께 결과를 만들기 위함이다. 종종 함께 일한다는 관점에서 수직 체계의 사일로(Silo)라는 선형적인 조직 모델을 생각한다. 수직적인 직선의 사일로라고 하더라도 집단의 힘이 필요하다. 집단의 형상을 그려본다면 동그란 모습일까 사각형일까?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DNA에 새겨져있기에 태생적으로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으로 뭔가를 하기 위해 중심을 잡아줄 리더가 필요하고, 리더의 방향성을 집단 구성원이 따르기 위해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는 권력이고 권력자 혹은 권력 집단이 전체 구성원의 최상위가 되야 한다. 돌아가 사일로 안에 있는 집단이더라도 결국은 피라미드다.

여기서 사일로의 완결성에 대한 당돌한 질문을 해보자. 조직내의 사일로는 자율성이 있을 수 있지만 독자적인 완결성을 가질 수는 없다. 사일로든 원이든 사각형이든 상관 없이 “단위 조직”은 조직의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큰 그림이라는 캔버스 안에서 단위 조직이 본연의 결과를 만들고 이어가야 한다. 큰 점이 선으로 이어져 면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하다. 사일로의 리더도 다른 사일로의 리더와 협력해서 보스가 보고 있는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대표 이사는 조직의 정점에 있는 리더다. 그리고 대표 이사의 리더십을 따르는 각 사업부와 직속 조직장이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 대표 이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팀이 달성해야 한다. 사업부 수장이라는 팀원은 대표가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사업부에서 담당할 몫과 함께 다른 사업부와 필요한 협업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정보 기반의 4차 산업 혁명 시대는 더욱 더 빠른 비즈니스 속도를 요구한다. 비즈니스 성공을 통해 조직이 달성하고자 하는 미션, 비전을 이루고 싶다면 조직 전체가 빠르게 움직일 역량이 있어야 한다. 달성할 꿈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개인이나 조직만으로 달성할 수는 없기에 함께 움직여야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리더의 팀은 두 개다. 리더가 팀원으로 있는 팀과 이끄는 팀이다. 어느 팀이 먼저일까?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의 목표 달성을 원한다면 속한 팀이 먼저다. 리더 역시 조직의 구성원이고 조직의 목표, 바꿔 이야기하면 상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구성원으로써의 몫이다. 몫을 실행하기 위해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본인이 이끄는 팀이다. 담당 조직이 상위 조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여해야 할 요소를 정의하고, 조직 시스템에서 필요한 협업을 조율한다. 팀원으로서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이다.

리더의 팀원은 같은 상위 조직장을 따르는 다른 리더들이다. 그리고 이끄는 팀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 이 우선 순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조직 안에서 일하는 것은 조직의 목표에 부응하기 위함이지 어느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팀이 존재하는 이유는 합당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팀을 대표하는 리더는 역할 수행을 통해 상위 리더가 대표하는 팀이 감당할 역할에 팀원으로 기여한다.

경쟁의 의미

혹자는 각 사업 주체가 건강한 경쟁을 통해 더 큰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물며 빅테크 기업조차도 여러 팀이 한 결과를 향해 경쟁하는 상황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의 핵심은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행 주체인 단위 사업 담당은 핵심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담당 조직의 결과가 된다. 불행하게도 이 방식은 부작용(Side Effect)이 있다. 

어떻든 서울에서 부산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어느 길을 택할지는 현재 상황에 달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눈앞의 결과를 무조건 달성해야 한다는 명제가 앞서고 오늘 이 시점의 정답에 맞춘 방식을 제시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면 곤란하다. 현재를 우선하는 방안은 결국 부채를 만들고 쌓인 부채는 더 큰 조직의 다음 보폭을 위한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다. 이에 더해 경쟁에서 낙오된 누군가는 불필요한 잉여로 규정될 수 밖에 없고 사람(담당자) 혹은 담당 조직의 존립을 위협한다. 누구든 이런 상황을 좋아할리 없고, 최선을 다해 이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뭐가 될까? 결국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안주하며 외부 상황에 두 눈을 감는 것이다. 쓰나미가 닥쳐도 울타리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원팀의 가능성 – 신뢰

원팀(One Team)은 가능한가? 리더라면 만들 수 있다. 원팀을 만드는 핵심은 리더에 달렸기 때문이다. 각 리더들이 자신이 속한 팀과 팀을 통한 각자의 기여, 그리고 팀원과의 협업을 통한 더 큰 가치에 가장 큰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행동한다면 원팀은 실현 가능하다. 팀원으로 다른 리더를 신뢰하고, 나의 기여와 다른 동료의 기여가 합쳐질 때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믿음이 선순환되면 팀원인 내가 난관에 봉착하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의 동료가 나를 위해 나서줄 것이기에 동료를 신뢰하고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손흥민 선수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원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손흥민 선수는 팀의 승리와 승리를 위한 개인의 기여에 대해 종종 언급한다. 그리고 본인이 골을 넣었다고 하더라도 승리하지 못했다면 승리에 대한 아쉬움을 먼저 이야기한다. 축구를 포함한 단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업 플레이다. 한 사람만 잘해서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협업해야 하고, 협업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골 위치를 잡으면 동료가 나에게 패스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이 담보됐을 때 단독 플레이가 아닌 협업 플레이를 통해 승점 3점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  내가 골을 넣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팀의 승리가 먼저여야 한다. 내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라면 확실히 넣어야 하지만 골 위치에 동료가 있다면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승점 3점을 챙기고 리그 우승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팀 플레이의 핵심 행동 기준이 될 때 원팀이 된다.

이에 반해 자신이 이끄는 조직을 먼저 챙기고 조직의 더 큰 이득을 위해 다른 리더와 경쟁한다면 원팀은 불가능해진다. 경쟁 환경은 승자 독식이라는 씨앗이 조직 시스템에 뿌려지게 하고, 불신을 전파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회를 절대 포기할 수 없으며, 설령 다른 팀에게 좋은 기회가 생기더라도 굳이 도울 이유가 없다. 경쟁에서 나에게 도움이 안되는 일에 굳이 힘을 보탤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절대 내 등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경쟁 상대인 다른 동료가 언제든 내 등에 칼을 꽂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정글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완벽해야 경쟁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경쟁의 승리자가 되더라도 얼마나 승리가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기에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원팀은 경쟁을 통한 개인의 최고 역량이 아닌 조직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천재 한명이 천명 만명을 먹여살린다고 하지만 천재 한명이 혼자 백만 천만을 위한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 백만 천만을 위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천명 만명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천재를 천재로 인정하고 천재가 더 큰 가치에 기여할 수 있도록 천명 만명이 믿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천재는 그들의 도움과 헌신에 감사해야 한다. 불신 지옥에 빠져 뛰어난 천재 동료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