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내 스트레스를 내가 풀지 못하면, 내 주변에 풀게된다. 주변에 준 피해는 도돌이표로 나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나 역시 번아웃이라는 시기를 겪었고, 스스로의 해소 방법으로 일로부터 도피처를 찾아 텃밭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어느 덧 만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하다보니 이 땅과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를 생각했다. 상추랑 고추로만 채울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봤는데 강원도 특성상 감자가 초보 농사꾼 입장에서 젤 무난하다. 물론 시골에서 자라 중학교때까지 어머니 도와 농사를 했지만, 안한지 30년이 넘은 사람이 할 줄 안다고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슬프지만 요즘 코딩 안한지 5년 가까이 되가는 관계로 개발자라고 이야기 안하는 거랑 같다. 코딩할 때가 젤 좋은 것처럼 그래도 호미질하고 삽질할 때, 일 생각을 포함해 모든 잡념을 지워주기 때문에 잘 하지도 못하는 농사를 한다.

농사는 안할 때가 젤 좋긴하다. 물론 잡념이 많아지긴 하지만 새소리, 바람소리 듣는 것만으로 힐링된다. 특히 눈 많은 계절이나 비올 때 지붕에 닿는 그 소리가 너무 좋다. 4년 농사를 지어보니 기후 변화를 체감한다. 원래 못짓는 농사긴 하지만 너무 더워져 첫 해 잘 되던 것들이 안되니 말이다. 나만 안되는게 아니라 옆집 할머니 댁도 안된다. 그래서 올해 농사는 감자만 하는 걸로. 어찌됐던 기름값을 쓸거고, 노동을 할 예정인데 뭐라도 얻으면 보람된다. 제대로 된 보람은 먹을 걸 많이 만들어내는데 있으니 기후라는 상황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뭐든 성장시킬려면 땅이 중요하다. 땅이 척박하면 뭔 짓을 하더라도 안된다. 키울려고 하는 작물의 특징과도 맞아야 한다. 막연히 기름지다고 해서 뭐든 잘 자라는건 아니다. 풀은 예외다. 어디서든 잘 자라니. 기본적인 환경이 준비되야 뭘 기대해볼 수 있다.
거름을 쳤다고 바로 뭘 심으면 안된다. 닭똥, 돼지똥이 주 원료인데 삭혔다고 하더라도 냄새 장난 아니다. 바로 심으면 뭐든 죽여버릴 기세니 몇 일 비바람에 독한 기를 빼야 한다. 이론적으로 좋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상호 작용이 이뤄질려면 그만큼 융합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긴 시간 여유를 두면 영향분이 대지로 흡수되는게 아니라 배수로 타고 흘러나갈 수 있다. 거름을 쳤다면 텃밭 농사꾼은 꼭 다음 주에 와서 땅을 엎어야 한다.

계획된 노동의 시간이다. 땅을 다 갈아엎고 감자를 심을 고랑을 만들어야 한다. 딱 한번 이걸 삽과 괭이로 갈아엎은 적이 있다. 서울로 돌아와 연차내고 앓아누웠고, 병원 통원 치료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실천했다. 다음부터는 주변에 농기계를 가지고 계신 어른께 땅을 갈아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고랑만 내가 원하는 높이와 깊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잡초는 정말 징글징글하기 때문에 비닐을 친다.
모든 걸 혼자 할 수 없다. 도구를 당연히 써야하고 직접 도구를 쓸 수 없다면 가진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협업해야 한다. 부탁이 될려면 사람과의 관계가 필수다. 좋은 시골 인심은 외지인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당연히 해주겠지? 어불성설이다. 상황에 맞는 관계를 설정하고, 모두에게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일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심었으면 다가 아니다. 특히 씨감자를 심어두고 가만히 놔두면 낭패를 본다. 감자는 상대적으로 손이 덜가는 작물이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다니는 입장에서 심은 후 그대로 방치하면 농사 망친다. 특히 비닐로 덮어둔 상태에서 방치하면 싹이 나오다가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싹이 열린 구멍으로 나오라는 법이 없다. 앞으로 나오기도 하고 옆으로 나오기도 한다. 싹이 나오는 시점에 구멍이 아닌 다른 쪽으로 볼록하면 그쪽으로 더 구멍을 크게 내줘야 한다. 활로가 생기지 않으면 더워지는 계절의 열기를 그대로 받아 타버린다. 잡초 막을려다 감자 자체를 죽일 수도 있다.
조직에 인재를 영입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기량과 역량을 갖췄더라도 아직은 조직 안에서 발현되기 전이다. 조직내에 올바르게 정착됐을 때, 인재가 제대로 인재로써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 “꽂아놨으니 님이 알아서 해야지!” 라는 것은 인재를 대하는 일종의 방임이자 방치다. 조직 시스템에 잘 융화되는지 살펴야하고, 폭넓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체계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틀을 바꾸지 못하면 결과를 만들 인재가 고사하는 경우가 나온다.

어느 정도 감자가 자라기 시작하면 종종 들여다봐야 한다. 감자를 얼마만큼 얻고 싶냐? 라는 생각에 따라 해야 할 일의 양이 달라진다. 작년에 생각보다 적게 나와서 두루 사람들에게 보내줄 양이 적었었는데, 올해는 나누는 기쁨을 좀 더 갖고 싶었다. 그럼 잡초를 뽑아야 한다. 아무로 비닐을 쳤다고 하더라도 고랑 사이로 난 잡초의 성장 속도는 어마무시하다. 이놈들이 햇빛을 가린다. 그리고 비닐 사이로도 잡초가 삐져나온다. 감자가 가져가야 할 영양분을 이놈들이 뺏아간다. 종종 보면서 눈에 거슬리는 놈들을 뽑아줘야 한다.
조직에도 항상 잡초같은 존재들이 있다. 조직이 가지고 있는 자양분이 성과를 위해 쓰이는게 아니라 개인의 이익 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다. 조직이 추구할 결과를 위해 써야 할 거름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심지어 도전하는 동료를 얽어매 비틀기도 한다. 관성이라는 가시로 칭칭 동아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원천 봉쇄하기도 한다. 그리고 썩은 사과가 되어 주변을 오염시킨다.
회사의 방향에 결을 맞춘 리더라면 당연히 이런 잡초들을 식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분리하거나 뽑아내야 한다. 간혹 감자밭에 다른 작물이 섞이는 경우가 있다. 감자를 키울거면 감자를 키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인재라고 하더라도 그 인재가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과 결과 도출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곳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리더와 조직이 온전히 조직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다.

올해 수확은 겨울과 봄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오랜 봄가뭄 때문에 완전 망했다 싶은 예측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텃밭 농사의 가장 큰 기쁨인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수확이고, 남은 찌그러기가 아닌 온전한 감자 몇 알도 챙겨갈 수 있을 양이다. 당분간은 감자 샐러드가 아침이고, 저녁은 삶은 감자이며 주말 특식은 감자전과 닭볶음탕이다. 극강의 더위와 가뭄이라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목표했던 수확을 할 수 있어서 기쁨이 두배되는거 아닌가 싶다.
그냥 사먹는게 훨 싼거 아니냐… 당연히 나올 말이다. 하지만 이건 감자 먹을려고 농사를 짓는것으로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이다. 어림잡아 백만원 넘게 투자해서 감자 10박스를 얻었는데…
조직, 그리고 더 큰 조직인 회사는 추구해야 할 목표와 결과가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이 만드는 결과의 의미가 궁극에는 상위 조직, 그리고 더 큰 상위 조직에 목표와 결과에 도움이 되야 한다. 감자 농사, 텃밭 농사로 내가 얻는 것은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것이다. 땀 흘리는 그 사이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다. 생각을 비우면 아예 새로운 생각이 머리 속을 채운다. 아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새롭게 채워진 생각을 가지고 다시 도시로, 회사에 돌아온다.
벡만원을 투자한 감자 10박스는 Local Maximum 결과다. 하지만 현재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술 전략과 실행은 몇 백억, 몇 천억을 좌지우지한다. 백만원 투자해서 회사가 몇 백억 단위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Global Maximum을 추구하는 마땅한 시니어 리더십의 자세라고 믿는다.
항상 고민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 자신만을 위한 Local Maximum인지 조직과 회사, 그리고 사회를 생각하는 Global Maximum일지. 허무맹랑하지만 꿈이 북극성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있다. 오늘도 이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