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커뮤니케이션 – 이해하기

이해하기

사람은 모두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다.

가족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람은 집단이 추구하는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부합할 때 사회 집단을 이룬다. 개인은 집단 내 행동(기여)을 통해 개인 이익을 달성하고자 사회 구성원이 된다. 리더십은 집단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개인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역할이다. 리더십은 구성원의 행동이 집단 이익에 부합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조직 관점의 좋은 리더는 개인과 집단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을 최소화해야 한다. 만약 이해 충돌 상황이 발생하면 이성적인(논리적인) 해석을 통해 집단 이익이 우선 될 수 있도록 구성원을 납득되도록 만든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라.”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발휘해야 할 리더십의 역할이고, 소통 방법이었다.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은 사회 변혁이다. 인류는 농경 사회를 통해 본격적인 조직화를 이뤘고,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사회 자체의 구조와 구성원의 역할을 재정의했다. 농경 사회에서 구성원은 1차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였다. 증기 기관을 통해 촉발된 산업 혁명은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 시대를 열었고 , 구성원은 학습(교육)을 통해 기계를 다룰 역량이 필요했다. 노동을 위한 학습은 상류 지배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진 지식이 일반 대중에게 빠르고 폭넓게 전파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지식의 보편성과 평등성이 일반화되며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은 지역(혹은 국경)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기에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그리고 최근까지 이어지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불균형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새로운 변혁은 대량의 정보 유통이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지면서 지식 혁명으로 등장했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구성원은 광대역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정보 접근이 가능해졌으며, 실시간으로 흐르는 많은 정보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리고 현재의 AI 혁명 시대는 유사 인간 지능을 갖춘 AI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구성원에게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시대 변혁의 시기별로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역량 변화는 있었지만, 개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집단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집단의 이익을 실현을 바탕으로 개인의 이익 역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아직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집단의 이익이 구성원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 리더십의 역할은 변혁의 유무와 무관하게 항상 강조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사회 변혁의 시점마다 등장한 여러 리더십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변혁기에 여러 리더십 본보기가 있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도 좋은 본보기이고 산업화 시대를 관통하며 경제 신화를 이끈 정주영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 역시 한국의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끈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사례를 든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역시 좋은 리더십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차 대전 실화 배경의 드라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에 등장하는 윈턴스 소령의 리더십을 많이 인용한다. 이들 모두는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좋은 리더십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좋은 리더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격변의 시점에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듣고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리더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구성원의 노력이 실제적인 성취에 도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구성원이 고생하는 근원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해야 한다. 더해서 변화하는 사회 흐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을 포함한 구성원이 현재를 정의한 한계 요인(Limits)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세종대왕님이 백성을 이해하셔서 한글을 창제와 한류는 리더십이 환경을 변화시켰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지식 혁명의 시대의 리더는 조직 목표에 구성원들이 참여하도록 끊임없이 토론하고, 단순한 지시가 아닌 경청과 이해를 바탕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기계 혹은 노동력 중심의 산업화 시대처럼 한쪽의 정보 우위를 기반한 일방적 지시가 먹히지 않는 시대가 지식 혁명 혹은 지식 산업 시대다. 넘쳐 흐르는 정보 과잉 시대에 올바른 취사 선택을 위해서라도 양방향 소통은 필수이다.

우리는 이성 혹은 논리를 통해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세상을 바꾼 많은 발명과 발견은 이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해를 위해 이성이 일차적으로 동작해야 한다. 대화의 맥락을 논리적으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이 가진 외형적인 특성이나 단순 언어를 논리 분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사람은 기계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상황에 등장하는 것이 감정이다.

감정은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든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았을 때는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감정이 이성보다 행동 결정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2002년 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너먼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함으로써 학계를 통해 인정받았다. 합리적인 인간(Econ)을 전제로 펼쳐졌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모델이 왜 실제 인간 세상에서 이론적 예측대로 동작하지 않는 원인이 사람의 감정에 있고, 이를 제대로 알아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실효성있는 경제 모델로 동작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y)이 되었다.

리더십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동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행동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왜 그것을 원하는지를 감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공감(Empathy)라고 부른다.